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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드라마 ‘태풍상사’의 주요 장면과 전개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997년, 외환 유동성 위기로 인해 대한민국은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속절없이 빨려 들어갔다. 무너진 것은 국가 경제만이 아니었다. 군부독재 시대를 벗어나 겨우 얻은 사회·문화적 풍요와 가능성, 개인의 삶도 함께 무너졌다. ‘태풍상사’(tvN)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IMF 시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다.
IMF 시대가 왜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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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풍상사’ 속 태풍상사에는 아버지 같은 대표와 개인의 성공보다 가족과 나라가 잘되는 것을 꿈꾸며 일하는 직원들이 있었다. 티브이엔 제공


드라마는 아버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태풍상사 대표 강진영(성동일)은 “척박하다는 수입 시장”에서 26아이텍반도체 주식
년 동안 “10명 남짓의 직원들과 함께 서로 손에 손을 모아 알토란 같은 성과를 이루어낸” 중소기업가였다. 능력 있는 ‘상사맨’이자, 직원들에게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직원들은 그 ‘아버지’와 함께 개인의 성공보다 가족과 나라가 잘되는 것을 꿈꾸며 일했다. “부모 세대가 이루어놓은 풍요 속에서” 아들인 강태풍(이준호)을 비롯한 청춘들은 “쾌락과 한탕주의릴게임동영상
”에 빠져 있었다. 진영은 그런 아들이 못마땅했지만, 아들에게는 다 계획이 있었다. 아버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시대를 열 계획 말이다. 원예학을 전공한 태풍은 수입 장미를 접목해 만든 국산 장미를 국내 최초로 세상에 내놓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진영은 쓰러져 끝내 일어서지 못했다. 진영이 사망하던 날, 정부가 결국 IMF에 구인터넷황금성
제금융을 신청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드라마는 이 상황의 충격을 “아주 큰 비”라는 말과 천둥소리로 표현한다.
‘태풍상사’가 1997년의 총체적 붕괴를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한 건 의미 있는 선택이다. 실제로 아버지들의 죽음이 줄을 이었고, 이른바 ‘아버지’로 상징된 모든 것이 무너진 시대였으니까. 아버지의 죽음 이후 태풍 가족 또단타로10억만들기
한 서울 강남 압구정 아파트에서 쫓겨난다. 꽃을 좋아하던 청년, 태풍은 부도 직전인 아버지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태풍상사 대표가 된다. 드라마는 태풍이 ‘상사맨’으로 거듭나 태풍상사를 재건해가는 과정을 중심으로 IMF 시대를 보여준다.
‘태풍상사’는 시대적 배경뿐 아니라 내용도 ‘1990년대’스럽다. 요즘 드라마이기보다는 1990년대 후반 인기를 끈 드라마 ‘미스터큐(Q)’나 ‘토마토’처럼 기업을 배경으로 주인공의 성장과 로맨스를 보여준다. ‘태풍상사’는 시대극이 아니다. 그 시대를 최대한 ‘촌스러운 것’으로 표현해 레트로(복고) 감성 가득한 소품으로 활용한 청춘 성장 로맨스물이다. 그렇기에 드라마는 그 시대를 잘 복원하거나 재해석하는 복잡한 시도 따윈 하지 않는다. 그저 잠깐이나마 “그땐 그랬지”라며 그 시대의 풍경을 떠올리며 흥얼거리게 한다. 딱 그뿐이다. 드라마의 이런 면 때문에 질문이 생긴다. 주인공의 성장과 로맨스를 보여주기 위해 굳이 IMF 시대가 필요했을까?
비교적 가까운 과거, 고통의 기억이 여전히 남은 시대를 다시 부르려면 두 가지 질문이 선행될 필요가 있다. 그 시대를 소환해 지금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 그 재현은 타당하고 윤리적인가. ‘태풍상사’는 두 번째 질문에서 멈칫하게 한다. 드라마는 IMF를 과거의 사건처럼 진열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IMF는 아직 끝난 적이 없다. 그때의 구조조정 논리는 신자유주의 질서로 굳어져 지금도 일상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체제에 관한 성찰 대신, 위기의 감정을 장식처럼 진열한다. 이를테면 국민적 고통과 연대를 상징했던 ‘금 모으기 운동’을 희화화하는 장면처럼. 그렇게 IMF 시대가 향수의 무대가 되는 순간, “가장 평범한 곳부터” 도려내진 현실은 주인공의 성장과 로맨스 서사에 덮인다. 물론 모든 삶이 불행하기만 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때의 일들이 레트로 소품으로만 기능할 때 IMF 시대의 고통은 “보통 사람들”의 얼굴로 환원되지 못한 채, 청년 기업가의 성공 신화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드라마를 “레트로 테마파크”로 평가한 평론가 위근우의 지적처럼, ‘태풍상사’는 그 시대를 딱 그 정도로만 활용한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아들 태풍은 부도 직전인 아버지의 회사를 살리기 위해 태풍상사 대표가 된다. 티브이엔 제공


위기를 함께 짊어진 여성들의 얼굴
그렇다고 이 “테마파크”가 전부 공허한 것은 아니다. 바로 드라마 속 여성들의 얼굴 때문이다. 그간 사회는 IMF 시대를 가부장 중심으로 기억했다. 당시 미디어는 남성들의 대량 실직을 부각했고, ‘아빠 힘내세요’ 동요가 상징하듯 대중문화는 이른바 ‘고개 숙인 가부장 기 살리기 프로젝트’에 동원됐다. 아버지의 희생을 담은 소설 ‘가시고기’나 ‘아버지’가 유행한 것도 이즈음이었다. 국가 경제 위기는 개인 희생, 국가와 가족 복원, 역경 극복의 담론으로 이어졌고 그 중심에는 ‘아버지’가 있었다. 위기가 가부장에게만 들이닥친 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태풍상사’는 신자유주의 체제로 인한 노동시장 유연화와 비정규직 보편화라는, 현재에도 강력하게 작동하는 시대의 변화가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삶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여러 여성의 얼굴을 통해 보여준다.
오미선(김민하)의 동생 오미호(권한솔)는 전문대 항공운항과를 졸업하고 승무원에 최종 합격하지만, IMF 사태로 채용이 취소된다. 취업이 좌절된 미호는 ‘엘리베이터걸’과 판촉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이간다. 김을녀(박성연)는 혼자 아들을 키우며 은행 부지점장까지 올랐으나, 30년 근속을 3년 앞두고 정리해고를 당한다. 이후 치킨집을 차리지만, 다단계에 빠진다. 차선택(김재화)은 태풍상사 사무보조로 시작해 차장까지 오른 커리어우먼이었으나, 태풍상사가 부도 위기를 맞자 생계를 위해 녹즙 배달원이 된다. 전업주부로 살던 ‘압구정 사모님’ 정정미(김지영)도 남편 사망 뒤 가정 경제가 급락하자 노동시장에 편입돼 “미싱쟁이”가 된다. 모두가 그 시대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전업주부로 살던 강태풍의 엄마 정정미(김지영 분)는 남편 사망 뒤 가정 경제가 급락하자 노동시장에 편입돼 “미싱쟁이”가 된다. 모두가 그 시대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었다. 티브이엔 제공


IMF 사태로 기회를 얻은 여성도 있다. 부모 대신 동생들을 돌보느라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태풍상사에서 경리로 일하던 미선은 상사맨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미선은 “여자가 어디 감히 상사맨을!”이라는 차별적 시선과 노골적 배제에 직면하게 된다. 미선에게는 그런 낡은 세계관에 맞서는 일과 상사맨으로서 위기의 태풍상사를 구해야 하는 이중 투쟁 상황이 펼쳐진다. 이처럼 “테마파크”와 같이 인공적이고도 허구적인 공간에서 IMF 시대를 버티는 여성들의 얼굴은 드라마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실’을 담당한다. 가부장의 몰락을 강조하며 여성들이 겪은 대량 해고, 비정규직화, 저임금 노동시장으로의 내몰림을 비가시화한 기존 문법을 반복하는 대신 여성들의 현실을 가시화했다는 점이 이 드라마의 미덕이다. 태풍의 돌발 행동, 태풍과 미선의 급작스러운 로맨스를 배치하는 대신, 이 여성들의 서사를 더 보여줬다면 어땠을까?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는 서사의 한계
드라마를 포함한 문화적 생산물은 당대의 필요로 사회적 기억을 재구성한다. ‘태풍상사’가 IMF 시대를 아버지의 죽음에서 시작해, 아들이 무너질 뻔한 아버지의 시대를 다시 일으켜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낸다는 서사로 재구성한 것도 IMF 이후 가장 위기라는 ‘지금’ 누군가에게 필요한 서사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 시절의 소시민들, 보통 사람들”의 위기 극복 서사를 대표하는 인물이 하필이면 중산층 가정에서 자란 청년 사업가인 점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설정은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기업 친화적 사고가 만들어낸 오늘날의 그늘을 반영하는 것 아닐까? 그런 면에서 IMF 시대에 무너진 “보통 사람들”의 얼굴을 여성의 얼굴로 보여준 것은, 지금 가장 필요한 기억의 정치로서 의미가 있다. 특정 시대를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중요한 정치적 문제다.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과거 회귀적 서사를 반복할 수도 있고, 미래로 한 걸음 내디딜 수도 있다. ‘태풍상사’는 어디쯤 있을까?
아무리 그 시대의 여성들을 소환했다고 해도 드라마의 중심축은 좌충우돌하며 청년 사업가로 성장하는 태풍과 주인공들의 로맨스다. 이런 전개 방식은 과거로부터 얼마나 전진한 걸까? 태풍은 아버지가 남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분투하고, 각자도생을 위해 떠났던 직원들은 태풍상사에 다시 모인다. 회사와 가족이 재건되고 로맨스도 무르익으며 드라마는 해피엔딩을 향해 달려갈 것이다. 이는 IMF 시대 이후 대중문화가 반복한 위기 극복 신화의 재생산이다. 개인들이 희생하고 노력해 기업을 살리고, 사랑으로서 위기를 극복한다는 이 서사는 구조적 문제를 직면하기보다 개인의 능력과 자유에 맡기는 신자유주의적 통치술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태풍상사’는 (현재까지는) 과거 회귀에 더 가깝다.
이런 통치술은 때로 여성 서사마저, 이 체제가 나아지고 있다고 착각하게 하는 알리바이로 활용한다. ‘태풍상사’가 그려낸 다양한 여성의 얼굴과 삶이 독립적인 서사로 성장하지 못한 채, 결국 태풍의 성장과 로맨스를 뒷받침하고 익숙한 세계의 복원에 동원된다면 말이다. 그렇게 IMF는 ‘아버지 없는 시대’에서 ‘아들이 새로운 아버지가 되는 시대’로 간판만 바꿔 단 채 연장되는 것이다. 이런 재현은 오래된 테마파크의 낡은 놀이기구나 눅눅해진 추로스와 다를 바 없다.
누락된 이름을 다시 부를 시간
기억은 언제나 완성되지 않은 문장이다. 누락된 이름들이 다시 불릴 때, 우리는 과거를 다르게 말할 수 있다. IMF가 레트로 소품이 아니라, 지금도 작동하는 체제의 언어임을 기억한다면 말이다. ‘태풍상사’가 그때를 통과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잠시 부활해 “그땐 그랬지”라는 추억담으로 소비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지금의 불안과 이 시대의 문제의식과 맞닿아 다시 말해지기를 바란다. 그런 마음을 담아 드라마에 등장한 여성들의 얼굴을 특별히 주목해 눈을 맞춰본다.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