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뜀박질로 후끈해진 등에 누군가의 손바닥이 느껴졌다. 속도가 떨어지는 걸 방지하고 응원을 전하기 위해 뒷사람이 뻗은 손이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놀랄 만도 했지만, 달리기가 끝날 때까지 돌아볼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여성 러닝크루(달리기 동호회)와 함께하는 동안에는 동료의 선의를 의심할 이유가 없었다.
여성으로만 구성된 달리기 동호회 ‘필레이디’ 회원 14명과 지난 16일 저녁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출발해 5㎞를 돌아오는 코스를 함께 달렸다. 맨 앞줄 페이서(달리기에서 속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며 달리는 주자) 신호에 맞춰 소액결제 한도 달리기가 시작됐다. 달리기 초보인 기자를 배려해 ‘600∼620(1km당 6분에서 6분20초)’의 속도가 유지됐지만, 달린 지 3분 만에 다리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왔다. 발바닥은 불 타듯 뜨거워졌고 숨이 차 명치가 짓눌리는 느낌이었다. 포기하고 싶었지만 “처음 치고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외면하기 어려웠다. 이날 완주는 순전히 동료들의 손길과 응원, 독려 카드 할부 수수료 덕분이었다.



필레이디 회원이 달리기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박찬희 기자


‘열풍’이라는 단어가 새삼스러울 정도로 달리기 인구가 급증한 가운데 여성을 중심으로 꾸려진 달리기 동호회들이 주목받고 있다. 필레이디를 비롯해 국민은행 전세자금대출 서울비너스, 쉬스쿼트 등 이미 러너들 사이 명성을 얻은 곳이 적지 않다. 이성 간 친목을 목적으로 한 ‘연애 크루’, 보행 방해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민폐 크루’ 등으로 달리기 동호회가 희화화되는 분위기 속에, 여성 동호회를 오로지 달리기와 연대감에만 집중한 공간으로 여기는 영향이다. 2016년 만든 필레이디도 지원자가 크게 늘었다. 창립회원 김 민법 제565조 선화(37)씨는 “1년에 한번씩 회원을 모집하는데, 지원자가 늘어 최근에는 경쟁률이 5 대 1까지 올라갔다”고 전했다.
필레이디 회원들은 편안함과 연대감, 안전을 여성 크루의 강점으로 꼽았다. 달리거나 잠시 쉬며 나누는 대화는 결혼식 참석 여부나 생리 주기 등 여성들의 보편적인 고민이었다. 김나현(30)씨는 “여성들만 있어 통하는 대화거리 특판예금 가 많다”며 “운동할 때도 여자들만의 고충이 있기 마련인데, 서로 운동용 속옷이나 생리용품을 추천하기도 한다”고 했다.
여성과 관련된 기념일도 함께 챙긴다. 필레이디의 경우 매년 여성의 날(3월8일)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8월14일) 달리기 행사를 연다. 그날만큼은 남성들도 초대해 함께 달리고, 기념일과 관련된 퀴즈를 맞추는 이벤트도 마련한다. 올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에는 달리기 참가비 100만원을 모아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 전액 기부했다. 필레이디를 이끄는 이정경 크루장은 “달리면서 그 의미를 되새기는데, 이런 날은 회원 참여율도 훨씬 높고 손님들도 많이 온다”고 했다.



여성 러닝크루 ‘필레이디’ 회원들이 달리기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필레이디 제공


무엇보다 함께 달리는 여성들을 보며 ‘러너’로서의 마음가짐을 되새기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필레이디 회원들은 입을 모았다. 10년째 달리기를 한다는 신유진(38)씨는 “남자들이 ‘너도 풀코스(42.195㎞) 달릴 수 있다’고 했으면 신체 조건이 달라 주저했을 텐데, 다른 여성이 ‘내가 해보니 너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해주니 목표가 생기더라”며 “마흔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게 버킷리스트(인생 목표)였는데 30대에 벌써 4번을 뛰었다”고 했다. 김선화씨도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하면서 달리기를 그만두는 여성이 많은데, 우리 크루는 출산을 겪은 분들도 많아 좋은 본보기가 되는 것 같다. 멈칫하는 동료들에게 ‘그 언니를 봐라!’라고 말할 수 있다”며 웃었다.
박찬희 기자 chpar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