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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8000m급 봉우리 14좌 무산소 완등자,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이곳을 ‘영혼이 머무는 공간’이자 ‘자연이 만든 가장 위대한 예술’이라고 했습니다. 장엄함을 넘어 경이롭기까지한 돌로미티의 자연을 실제로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평가입니다.
그런데 최근 돌로미티 지역은 천혜의 자연과 함께 와인으로도 주목 받고 있습니다. 생산량은 이탈리아 전체의 1%에 불과하지만, 몇년 새 미국·독스톡마켓
일·벨기에·네덜란드·영국·스웨덴 등 주요 와인 소비국에서 앞다퉈 수입량을 늘리면서 업계의 관심을 끄는 것이죠.
깨끗함과 순수함을 무기로 작지만 강한(small but strong) 브랜드로 지구촌 와인 애호가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알토 아디제 와인(Alto adige DOC)에는 어떤 매력이 숨어있을까요? 9월 초 알토 아디제 와인협회가 전뽀빠이놀이터릴게임
세계 와인 전문가 80여명을 초청한 와인서밋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던 기자가 그 비밀을 파헤쳐 봤습니다.



알토 아디제의 포도밭 풍경. 산의 경사에 기대 계단식으로 포도나무를 심어 키운다. 저 멀리 깎아지는듯한 절벽 봉우리가 보인다. 겉면이 하얀 것은 석회암과 같은 탄산염암의 릴게임검증
일종인 돌로마이트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사진=전형민 기자]




거부할 수 없는 깨끗함과 순수함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생수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십중팔구 에비앙(evian)을 떠올리실 겁니다. 물론 최근 소비자 보호와 관련한 이슈도 있었증권가격
고 가격면에서 훨씬 비싼 생수도 존재하지만, 그동안 전세계인에게 에비앙은 ‘깨끗한 알프스의 물’이라는 이미지로 기억돼 왔습니다.

비단 에비앙 뿐만 아니라 볼비크(volvic), 산 펠레그리노(san Pellegrino), 아쿠아 파나(acqua Panna), 페리에(perrier) 등 한번 쯤 봤을 법한 생수 브랜드들도스탁뷰
한결같이 알프스 수원지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이들은 왜 이토록 알프스를 강조할까요? 유럽 최대 고산지대인 알프스는 만년설과 빙하, 고산 호수 등 인간의 손때가 덜 묻은 자연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알토 아디제 와인도 이런 알프스의 이미지를 계승합니다.



알토 아디제와 눈 덮인 알프스와 그 아래 펼쳐진 와이너리의 모습. [출처 미상]



알토 아디제 지역 포도밭의 해발고도는 200m에서 1000m 사이로 다양합니다. 대개 400m~800m 사이에 포도밭이 위치하는데, 이는 다른 와인 산지와는 확연하게 대비되는 고도입니다. 2500m~3300m에 이르는 돌로미티 봉우리들과 포도밭 사이에 별다른 오염 지역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자연 그대로를 품은 포도가 생산되는 환경입니다.

높은 고도는 매일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극한의 일교차(낮과 밤의 기온차)를 만들기도 합니다. 알프스 고산지대 특유의 직사광선 덕분에 낮에는 강한 햇빛이 내리쬐어 포도가 충분히 익고, 밤에는 순식간에 기온이 떨어지며 포도의 산미가 잘 보존되는 겁니다.
실제로 알토 아디제 지역은 여름철 한낮 기온은 28℃~30℃지만, 매일 밤 10℃~12℃까지 기온이 떨어져 하루에도 15℃~20℃ 이상의 일교차를 보입니다.
덕분에 알토 아디제 와인은 산뜻한 산미와 풍부하고 직관적인 아로마, 풍부한 미네랄리티가 대표적인 특징으로 꼽힙니다. 보르도 스타일 와인처럼 무겁기보다는 부르고뉴 스타일의 섬세하고 우아한 와인인 셈인데, 이런 스타일은 최근 와인 시장의 트렌드에도 부합한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알토 아디제의 한 와이너리에서 시음을 즐기는 모습. 대부분 와이너리에서 일반인이 쉽게 들러 와인을 시음할 수 있는 테이스팅 코너를 운영한다. [사진=전형민 기자]




천혜의 자연이 빚어낸 다양성
새하얗게 반짝이는 산꼭대기로 유명한 돌로미티에서 가장 압권인 시점은 해질녘입니다. 낮 동안 햇빛을 반사시키며 흰빛을 뿜어내던 산꼭대기 절벽이 일순간 로제 와인처럼 핑크빛으로 뒤덮이기 때문인데요. 사람들은 이 신비한 장면을 엔로사디라(enrosadira)라고 부릅니다.

이 지역 산맥 자락에 사는 소수 민족, 라딘(ladin) 사람들의 언어로 ‘장밋빛으로 물들다’를 뜻하는 이 경이로운 장면에는, 당대의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현상에 놀란 인류가 만든 전설이 전해내려옵니다.
오래 전 돌로미티에 터를 잡고 아름다운 장미 정원을 만들었던 난쟁이(드워프·dwarf)들의 왕 라우린(Laurin)이 장미 정원의 아름다움에 홀려 정원을 찾았다가 공주를 유괴한 인간 왕자에게 분노해 “아무도 낮에도 밤에도 나의 장미 정원을 보지 못하리라”라는 저주를 내리는 바람에, 낮과 밤이 아닌 해가 뜨거나 지는 순간에만 잠깐씩 모습을 드러낸다는 이야기 입니다.



엔로사디라의 절정. 처음 보는 사람은 숨 쉬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로 황홀한 빛으로 빛난다. [출처 미상]



과학이 발달한 현대에 와서 엔로사디라의 원리는 알펜글로(alpenglow)라는 대기광학 현상으로 밝혀졌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낮은 각도로 비추는 햇빛과 대기의 산란이 흰 바위에 맞물려 발생하는 조화죠. 특히 흰 바위가 절벽처럼 수직으로 늘어선 돌로미티였기 때문에 그 붉은 빛은 더 도드라졌다고 합니다.

바로 이 흰 바위가 알토 아디제 와인을 특별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흰 바위의 정체는 석회암(limestone)과 같은 탄산염암의 한 종류인 돌로마이트(dolomite)인데요. 과학적으로 석회암과 돌로마이트는 명백하게 다르지만, 포도에 미치는 영향은 비슷합니다.
돌로마이트가 주로 포함된 토양은 스펀지처럼 물을 저장하면서도 배수가 좋은 특성이 있습니다. 덕분에 생육기 포도나무에게 적절한 수분 스트레스를 만들어주죠. 포도나무는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뿌리를 깊게 내리면서 다양한 지층의 양분을 흡수하니, 이는 곧 와인의 복합미를 증가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수분과 열 조절이 잘 되는 토양에 큰 일교차까지 겹치면서 포도 나무의 생장 속도가 완만하게 관리되고 때문에 과육이 오랜 기간 산도를 유지할 수 있고, 섬세하고 다양한 아로마를 가지게 되는 셈인데요. 비슷한 산지로 샴페인으로 유명한 프랑스의 샹파뉴(champagne) 지방이 있습니다.



알토 아디제 포도밭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로마이트 자갈. [사진=전형민 기자]



만약 토양이 단순히 돌로마이트로만 이뤄졌다면 알토 아디제 와인이 이렇게 특별하진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돌로마이트 외에도 화산암(porphyry)과 화강암(granite)이 쉽게 발견됩니다. 불과 수십미터를 사이에 두고 전혀 다른 토양이 나타날 정도로 다양한 토양 성분을 자랑합니다.

이는 알토 아디제 지역 어딜 가더라도 쉽게 볼 수 있는 기암괴석과 깎아지르는듯한 절벽과 연관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 전 알프스 조산운동 당시 아드리아 미소판과 유라시아판이 맞부딪쳐 융기하면서 마그마의 생성과 상승·냉각으로 화성암들이 대거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 역시 포도 과실의 생장과 와인의 캐릭터에 각각 주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화강암의 경우 밝고 선명한 산도와 정교한 탄닌에 영향을 주고, 화산암은 와인으로 양조했을 때 짭짤함과 화한 느낌의 스파이스(spice) 노트, 스모키(smoky) 뉘앙스 등에 영향을 줍니다.
결국 약 4000만년 전 돌로미티 일대 지각 활동으로 만들어진 천혜의 자연 환경이 알토 아디제 와인을 더 풍요롭게 만든 셈입니다.



석영(quartz)이 섞인 화산암(porphyry)의 모습. 알토 아디제에는 위와 같은 특성의 화산암을 비롯해 화강암(granite)과 돌로마이트(dolomite) 토양이 주를 이룬다. [사진=전형민 기자]




경쟁력 있는 토착 품종 포도들
여기에 과거부터 알토 아디제 지역에서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자라던 토착 품종들이 최근 각광을 받으면서 특별함을 더하고 있습니다. 화이트 품종의 게부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와 레드 품종의 스키아바(Schiava·Vernatsch)입니다.

특히 국제품종(여러 국가·대륙에서 폭넓게 재배되고, 품종명 자체로 시장 인지도가 높은 포도 품종)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잘 알려진 게부르츠트라미너는 그 이름도 알토 아디제 지역 트라민(Tramin) 마을에서 따왔습니다.
하지만 알토 아디제의 게부르츠트라미너 와인은 우리가 아는 보편적인 게부르츠트라미너와는 전혀 다른 느낌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보편적인 게부르츠트라미너는 주로 프랑스의 북동부, 알자스(Alsace) 지역에서 재배하고 양조하는데, 약간의 당도와 풍부한 열대과실미로 풍만하고 관능미가 있는 스타일입니다.
반면 알토 아디제의 게부르츠트라미너는 철저하게 드라이(dry·달지 않은)한 매력이 뚜렷합니다. 꽃향과 정향, 생강 같은 스파이스 노트가 뚜렷하고, 산도가 강렬하지만 드라이하게 만들어진 덕분에 입에서는 훨씬 깔끔하고 타이트하게 느껴집니다.
이는 한국 등 아시아 시장에 소구할 수 있는 포인트로 지목됩니다. 아시아권 시장에서는 단술보다는 드라이한 술이 훨씬 잘 팔리기 때문인데요. 그동안 알자스 와인 때문에 달다는 선입견이 생긴 게부르츠트라미너 자체에 대한 시선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포도품종 중 하나인 게부르츠트라미너 과실의 모습. 손바닥보다 조금 큰 크기의 포도송이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게부르츠트라미너는 청포도에서 시작해 익을수록 점차 분홍빛을 띈다. [사진=전형민 기자]



스키아바는 게부르츠트라미너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옅은 루비색의 매력적인 레드와인입니다. 가벼운 바디감과 낮은 탄닌, 상큼한 산도 등 특징으로 밝고 경쾌하게 마시는 와인이 대세인 최근 트렌드에 부합하는 품종으로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포도 품종 자체가 체리와 딸기 등 붉은 과실미와 아몬드 같은 고소한 느낌의 견과류 뉘앙스를 풍기는데다 알코올 도수도 12% 전후인 덕분에 시원하게 칠링해 가볍게 즐기기 좋은 스타일로 주로 양조됩니다.
포도송이가 크고 과실 껍질이 얇은데다 수확량 잠재력이 워낙 좋아 포도송이가 익기 전 일찌감치 아랫단을 고의로 잘라내는 그린 하베스트(green harvest·착과 조절)를 하는 것은 다른 지역에서는 흔치 않은 특이점입니다.
수확량이 좋다보니 가격이 워낙 저렴한 것도 매력 포인트입니다. 현지에서 상당히 공들인 스키아바 와인 한 병을 보통 10유로(약 1만6000원) 초반대로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한국으로 먼길을 돌아 수입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이 기대됩니다.



그린 하베스트한 스키아바 포도송이의 모습. 역삼각형인 포도송이의 밑단을 일찌감치 잘라내어 과실의 농도가 분산되는 것을 막았다. [사진=전형민 기자]




가장 작지만, 가장 다양하고 독특한
서두에 언급했지만, 알토 아디제의 와인 생산량은 전체 이탈리아 생산량의 단 1%(32만 헥토리터)입니다. 이는 와인의 종주국으로 꼽는 이탈리아라 하더라도 정말 작은 수준이죠. 현재 가장 프리미엄이라고 꼽는 생산지인 프랑스 부르고뉴의 연간 생산량이 6배에 달하는 약 190만 헥토리터라는 점을 상기하면 얼마나 작은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 때문에 이곳을 처음 접하는 와인 애호가들은 ‘단 1%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는 선입견을 가지게 됩니다. 저 역시 그러했고요. 하지만 직접 방문하고 경험한 알토 아디제 와인은 작지만 다양하고 독특한 매력을 보여줬습니다.
감히 수천만년 전 자연이 선사한 험준하고 척박하지만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돌로미티를 순수하게 담아낸 와인이라고 부를만 합니다. 돌로미티가 가장 아름답게 빛나던 순간의 장밋빛, 엔로사디라의 황홀함을 붙든 알토 아디제 와인의 미래를 주목해봅니다. Viva il vino!



알토 아디제 지역 포도밭의 풍경. 저 멀리 우뚝 솟은 돌로미티에 어렴풋이 석양이 지고 있다. [사진=전형민 기자]






*이번 와인프릭은 지난 9월1일부터 8일까지 알토아디제 와인협회 초청으로 ‘Wine summit 2025’에 한국 대표로 참석하고 경험한 것을 토대로 작성했습니다. 초청해준 협회측과 한국 에이전시인 홉스코치코리아에 감사를 표합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의 역사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그만큼 여러 가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는데요.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국제공인레벨을 보유한 기자가 재미있고 맛있는 와인 이야기를 풀어드립니다.